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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FM <국민과 함께 국군과 함께>2013.12.28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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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FM <국민과 함께 국군과 함께>2013.12.28



1. 지난 주에 세종대왕의 훌륭한 리더십을 소개해 주셨는데요,


오늘은 어떤 분의 리더십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



예 이계진 진행자님은 역사속의 장군 중에 바로 생각나거나 존경하는 장군이 있으신지요? 저도 이순신 장군을 존경하며 롤 모델로 본 받기위해 나름대로 노력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이순신 장군은 일본군에 비해 열세한 전투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23전 23전승 불패의 신화를 남기며 일본의 침공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지켜내신 민족의 성웅으로 4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분이지 않습니까?


오늘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에 대하여 저의 생각을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2.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꺼져가는 이 나라를 지킨 성웅인데요,


이순신장군의 대표적인 리더십을 꼽으라면 어떤 리더십이 있을까요?


(부하에 대한 존중과 배려 그리고 열린사고~)


예 이순신 장군께서 23전 전승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리더십을 꼽으라면 부하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이순신장군은 부하 장병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며 승리하는데 중점을 두고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고 전투를 수행하였습니다. 임진왜란 첫해의 왜군과 조선 수군의 피해를 비교해보면 왜군은 함선 320척 파손되고 2만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반면 조선군은 함선은 한척도 피해가 없었으며 사상자도 200여명만 발생하였다고 함.


그리고 승전 장계를 올릴때는 전쟁에 참가하여 공을 세운사람은 종의 이름까지 올리며 자신의 공을 부하들에게 돌렸다고 합니다.



3. 이순신장군은 전장에서는 엄격하고 인간적으로는 대단히 자애로운 분이셨다고 하는데 어떤 사례들이 있습니까?


이순신장군은 전장에서 탈영하는 병사를 참수를 하고 훈련이나 무기관리 등 임무를 소홀히 한 병사를 엄하게 처벌하여 군 기강을 바로세우면서 부상 장병에 대한 치료에 정성을 다하며 전사자는 사체를 보관하였다가 군관을 임명하여 고향에 안장하고 유가족을 위로 하였다고 함.


그리고 전쟁 중에도 전투가 없는 지역에는 백성들에게 고기잡이와 소금생산을 하게하고. 피난민들에게 농사를 짖도록 선조에게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장병들은 물론 지역의 백성들까지 ‘필사즉생(必死卽生) 필생즉사(必生卽死)’ 즉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반드시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라는 장군의 전장철학을 자발적으로 실천하였다고 생각합니다.






4. 이순신 장군은 한 때 역적으로 몰려서 백의종군 하기도 했죠?


비유를 하지만 대장에서 병사로 강등이 된 셈인데 그럼에도 전투에 참전했다는 것은 그만큼 국가를 위한 충성심이 투철했다는 뜻이 아닐까 싶은데


이점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예. 이순신 장군은 32세의 늦은 나이로 무과에 합격하여 23년간 3번의 파직을 당하고 1번의 사형선고와 2번의 백의종군을 겪는 어려움을 당했지만 그때마다 조정을 원망하거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임무를 받으면 나라와 백성을 위해 묵묵히 최선을 다한 참 군인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1597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4만 대군으로 재침공) 원균의 상소와 서인들의 모함을 받아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되고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28일 만에 정탁 등의 노력으로 특사되어 도원수 권율장군 밑에서 백의종군하였습니다. 원균이 참패하자, 3도 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되어 12척의 배로 적선 133척과 대결하여 명랑 싸움에서 왜선 30척을 격파한 전례가 있지요.



5. 이순신 장군은 항상 불리한 상황, 전력이 약한 상황에서 승리를


이끌었지 않습니까? 이건 어떤 리더십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철저한 대비태세~)


예. 이순신 장군은 일본군에 비해 상대적을 약한 전투력 이었음에도 23전 전승을 하였습니다. 당시의 조선 조정에서는 일본이 침공을 않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에 이율곡 선생의 10만 양병 설을 외면하면서 정쟁만 일삼고 있었지만 이순신 장군은 왜군의 침략을 예견하고 철갑선인 거북선을 만드는 등 무기와 군량미를 확보하며 장병들의 강도 높은 훈련으로 전투태세를 유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과 강화가 진행되는 중에도 병기를 만들고 군량을 비축하며 군를 수행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은 이순신장군의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유비무환의 리더십이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6. 이순신장군은 거북선과 총통을 만드는 등 무기를 만드는데도


창의성을 발휘했지 않습니까? 이런 점은 어떤 리더십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탁월한 창의력과 통찰력~)


예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건조하고 총통을 개발한 것은 왜군의 전술과 함선과 무기의 장단점을 연구하여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적용한 탁월한 창의(새로운 의견을 생각하여 냄)와 통찰(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봄.)의 리더십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화기의 사거리와 위력 면에서 왜군의 소총을 압도할 수 있는 총통의 개발, 왜선의 성능을 능가하는 철갑의 거북선 건조, 이의 특성을 고려한 전법 구사 등에서 이순신장군의 탁월한 창의력과 통찰력을 알수가 있습니다.



7. 이순신 장군께서는 무엇보다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을 지니셨다고요?


(솔선수범~)


예, 삼도수군통제사 재직 시 몇 년간 전대를 풀지 않고 근신하는 자세로 소임을 다하였으며 두 번의 백의종군 시에도 조정을 원망 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원균이 참패한 칠천 량 해전의 절망의 상황에서도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으니 사력을 다해 싸우면 막아낼 도리가 있습니다.”라고 하며 군사들을 독려하여 전장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는 신분사회라서 능력이 있어도 신분이 안되면 활약 할 수가 없었는데 따로 무과를 실시해서 능력 있는 병사들을 군관으로 발탁하여 활용하였으며 나대용을 군관으로 선발하여 거북선을 건조하도록 하는 등 능력에 따라서 인재를 활용하는 리더였습니다.



8. 이순신장군께서 효성도 지극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머니를 진지 가까이 모신적도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전쟁 중에도 공은 항상 어머님을 잊지 못하였다. 난중일기에 80여회에 걸쳐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나타나 있으며, 휴전중의 말미를 이용하여 잠깐 동안이나마 어머님을 위로해 드리면서 행복을 느끼기도 하였답니다. 그리고 어머님이 82세 되시던 해로 10월 7일에 여수 본영에서 수연 잔치를 차려드린 것이 모자가 만난 마지막 이었다고 합니다.


(효는 모든 행실(백행)의 근본이라 하는데 이순신장군이 본보기라 생각됨.)



9. 이순신장군은 군인이라면, 지휘관이라면 누구나 존경하고 배우고 싶은 위대한 장군인데요, 시대가 변해도 이순신 장군에게서 배울 수 있는 리더십이 많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어떠 점들을 배워야 할까요?



에 이순신 장군님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리더십은 많습니다만


4가지로 압축하여 말씀드리면


첫째는 자신의 안위나 영달보다 국가와 백성을 위하며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전장철학을 실천한 투철한 충성심에 의한 선공후사와 위국헌신의 리사하고 운주당을 설치하여 부하들과 토론하며 좋은 의견이면 종의 의견까지도 적더십


두 번째는 백성들과 부하들의 희생을 최소화하는 전략전술을 구용하는 존중과 배려의 리더십,


세 번째는 일본의 침공을 예측하고 일본군의 전략과 무기, 함선의 특성을 고려하여 거북선과 총통개발하고 학익진 전법을 구사하는 탁월한 통찰과 창의의 리더십


네 번째는 철저한 자기 관리와 임무완수에 최선을 다하는 솔선수범의 리더십 등으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순신장군의 훌륭한 리더십은 군대는 물론 공직사회의 리더들이 본받아 실천하면 큰 성과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진행자님 이순신 장군께서 임진왜란 도중에 한산도(경남 통영소재) 제승당에서 라라를 걱정하며 지은 시조 한산 섬 가를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 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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