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동아일보(2005년 9월 12일)
글쓴이 :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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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지만 강한 군대를 보았다

                                                                                                                  서지문(고려대학교 영문과 교수) 

우리 군대는 학력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군대라고 한다. 정규 대학 재학 이상의 학력 소지자가 70%를 넘는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세계에서 가장 비지성적인 군대문화를 가진 나라에 속한다. 우리의 군대문화는 일제강점기의 잔재로 청산 대상 1호가 돼야 할 텐데, 아직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런 억압적인 군대문화는 폭력조직은 말할 것도 없고 각급 학교와 직장에까지 확대됐고, 가정에도 스며들었다.



군대를 청년들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은 심정으로 가는 곳이 아닌, 부모로서는 아들을 사지에 보내는 심경으로 보내는 곳이 아닌, 그리고 1년에 몇 번씩 전 국민을 몸서리치게 만드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는 곳이 아닌 곳으로 만들 방법은 없을까? 다정다감하던 청년이 ‘군대식’ 사고에 물들어 나오는 곳이 아닌, 의젓하고 속 깊은 어른이 되어 나오는 그런 곳으로 만들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그런 희망을 보여 주는 사단이 있다는 것을 최근에 알고 확인차 방문해 보았다. 후방에 있는 어느 사단이 ‘상호 존중과 배려의 병영문화’를 조성하기로 결정한 경위는 이렇다. 이 사단의 사단장이 재작년에 부임하고 얼마 안 돼 2건의 가혹 행위가 발생해 부하 7명을 처벌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런 사고를 근절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병사들 간에 서로 존중하는 언어를 사용하고, 경례를 한 후에도 반드시 따뜻한 인사말을 나누며, 비인간적인 군대식 관습을 지양하고 진정한 상호 존중의 예절을 생활화한다’는 ‘존중과 배려의 병영문화 3대 원칙’을 선포하고 실행하도록 했다고 한다.


초기에는 내부적으로도 ‘부드럽고 강한 군대’가 가능할까 하는 회의와 몸에 익지 않아 어색하고 실천이 어렵다는 저항, 특히 신병 시절에 톡톡히 당하고서 ‘되갚음’을 못하는 상병 병장들의 불만도 있었지만 이제는 모든 병사뿐 아니라 지휘관들도 행복해하고 군기 사고와 가혹 행위가 현격히 감소하는 효과를 거뒀다고 한다.


아직도 외부에서는 군대는 절대적인 상명하복으로 다스려야 기강이 서고, 군기를 잡으려면 가혹 행위가 불가피하다는 관념에서 못마땅해하기도 하고 걱정도 하는데 이 사단은 병사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함으로써 군기가 강해질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한다.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해라’가 아니라 이유와 목적을 설명해 주고 함께 과제를 수행하자고 하면서 훈련 강도를 높였는데, 병사들의 기가 살면서 학습 효과가 높아져 조교와 교관들도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병사들을 만나 보니 표정이 밝고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휴가 때 가족과 친구들에게 선임병과 신병이 함께 마술을 배우는 내무반 생활을 이야기하면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을 듣는다는 병사, 아무리 연습해도 사격 실력이 늘지 않아 몹시 괴로웠는데 ‘잘하고 있다’는 상병의 격려를 듣고 새로운 각오로 연습해서 사격을 잘하게 됐다는 병사, 군대에 와서 몰랐던 자신의 글재주를 발견하고 자기계발을 하게 됐다는 병사 등 모두 부모님이 아주 기뻐하신다며 행복해했다.


우리 군의 현대화, 정예화는 더 늦출 수 없는 숙제가 아닌가. 군대가 공포에 의한 맹목적 복종에 의지해서 전투하던 시대는 지났다. 신세대 장병들이 승복할 수 없는 강압의 군대문화가 계속되면 군부대 사고는 더욱 빈발할 것이고 사기와 능률은 갈수록 저하되고 국가 비상시에는 기능이 마비되고 말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고함과 폭력으로 부하들의 충성을 얻어 냈는가? 공포의 정복자 칭기즈칸의 군대도 내적으로는 매우 민주적인 체제여서 그런 가공할 응집력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상호 존중과 배려의 문화가 군대문화로 정착되면 우리의 고질적인 지역감정도 군대 경험을 통해 해소될 수 있지 않겠는가. 모든 남성이 2년을 굴욕감과 두려움 속에서 보내지 않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원숙한 인격을 길러서 나온다면 우리나라는 10년 안에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체질 개선을 할 수 있다. 모든 부모와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어른들이 단결된 의지로 이 개혁만은 꼭 이뤄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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