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향기

황포군관학교 - 임익권
글쓴이 :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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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원이 세우고 장제스가 교장을 맡았던 근대중국 군부의 산실 황포군관학교 졸업생 대부분은 공산당과 국민당간의 거듭된 합작과 내전상황에서 총부리를 겨눠야 했고, 중일전쟁시기 희생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중국인민해방군이든 타이완 군이든 역사 속에서 뿌리를 공유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1920년대 중반부터는 빼앗긴 나라를 찾고자 입학하여 정통군사교육을 받은 조선인 청년들도 상당수 있었지요.


의열단을 조직하여 왜놈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약산 김원봉이 바로 그 중의 한분. 1938년 다시 조선의용군을 창설하여, 당당하게 중일전쟁에 참전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웁니다. 그러나 해방과 분단과정에서 친소, 친일세력들이 남북한에서 집권을 하고, 동족상잔의 비극과 함께 냉전체제로 들어서자 조선의용군 활약상은 남북한 모두의 역사에서 지워집니다.


1910년 경술년, 일제의 강제합병으로 나리를 빼앗기자 우당 이회영 선생 집안은 가산을 모두 모아(현 싯가 600)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전사를 양성하여, 무장투쟁으로 나라 찾기에 나섰습니다만 이 역시 남북한의 역사교과서는 외면해왔지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을 다시 새겨봅니다. 우리 군이 선열들의 애국혼을 제대로 계승한다면 젊은이들이 자긍심을 갖고 신명나는 병역의무를 수행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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