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향기

선종(禪宗)의 北宗과 南宗 - 임익권
글쓴이 :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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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대사(達磨大師. Bodhi Dharma. 중국 양() 나라 고조 때인 527년경 인도에서 갈대를 꺾어 타고 바다를 건너 광주(廣州)에 상륙한 후 선종(禪宗)의 시조가 되었다.) 이래 5代祖 홍인대사 문하에서 수제자로 인정받았던 신수대사(神秀大師)는 깨달음을 이렇게 말했다.


身是菩提樹(신시보리수) : 몸은 깨달음의 나무요


心如明鏡臺(심여명경대) : 마음은 밝은 거울틀이니


時時勤拂拭(시시근불식) : 때때로 털고 부지런히 닦아서


勿使惹塵矣(물사야진의) : 먼지 끼거나 때 묻지 않도록 하세


 


이에 혜능대사(慧能大師) 이렇게 답했다.


菩提本無樹(보리본무수) : 깨달음에 본래 나무가 없고


明鏡亦非臺(명경역비대) : 밝은 거울 또한 틀이 아닐세.


本來無一物(본래무일물) :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何處惹塵矣(하처야진의) : 어느 곳에서 먼지 끼고 때가 일까?


 


두 사람의 문답을 지켜본 홍인대사는 혜능대사(慧能大師)를 도교의 6代祖로 낙점하였다. 그러나 결국은 이 神秀慧能으로 말미암아 선종(禪宗)北宗南宗으로 분화된다.


흔히 말하기를 선종은 불교를 아버지로 하고 도가사상을 어머니로 하여 탄생한 혼혈아로 어머니를 더 많이 닮았다고 한다. 선종은 선을 종지(宗旨)로 삼는 종파라는 뜻이다. ''은 산스크리트어 '디야나(dhyana)'의 발음을 딴 '선나(禪那)'에서 나온 말이다. '디야나'가 깊은 명상을 가리키는 말이니 결국 명상을 중시하는 종파이다. 선종의 기원은 꽃과 미소에서 출발했다. 그 옛날 석가모니가 영산에서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설법했을 때 설법 도중 말을 멈추고 가만히 연꽃을 들어 사람들에게 보였지만 아무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마하가섭만이 그 뜻을 이해하고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이른바 염화미소(拈花微笑). 석가모니가 말로 남긴 가르침은 기억력이 뛰어난 석가모니의 시자인 아난다가 기록하여 경전으로 남겼지만 말로 전할 수 없었던 가르침은 꽃이나 미소를 통해 마하가섭에게 전해졌다고 한다. 이른바 문자를 세우지 않는 불립문자(不立文字)의 가르침이요, 경전 밖에 따로 전한 교외별전(敎外別傳)의 가르침이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 이심전심(以心傳心)의 가르침이다.


마하가섭에게 전해진 선의 등불은 계속 이어져 28조인 보리달마(菩提達磨)에 이르러 마침내 중국에 전해진다. 보제는 깨달음이라는 뜻이고 달마는 법이라는 뜻이다. 흔히 줄여서 달마대사라고 한다. 달마대사는 중국으로 와서 당시 불교에 심취해 전국에 수많은 사찰을 짓고 승려들에게 보시했던 양 무제와 만났다고 한다. 당시 무제는 달마에게 자신이 불교를 위해 쌓은 수많은 일을 자랑하며 자신에게 어떤 공덕이 있냐고 물었다. 기대와 달리 달마는 전혀 없다고 답했다. 그러자 무제는 성스러운 가르침의 근본 뜻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달마는 텅 비어 성스러운 것이 없다고 답했다. 무제가 도대체 당신은 누구냐고 묻자 달마는 모른다고 답했다. 멍하니 있는 무제를 뒤로 하고 달마는 갈댓잎 하나에 몸을 싣고 장강을 건너 숭산의 소림사 동굴에서 9년 동안 벽만 바라보고 참선했다고 한다. 이른바 9년면벽(九年面壁)이다.


하루는 혜가(慧可)라는 사람이 찾아왔는데 달마가 벽만 바라보고 응답을 하지 않자 자신의 팔을 잘라가며 가르침을 구했다. 그는 달마에게 자신의 마음이 불안하니 편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달마는 먼저 그 불안한 마음을 보여 달라고 했다. 혜가는 자신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달마는 이미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고 했다. 보통 사람이 듣기에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지만, 혜가는 이 말에 크게 깨쳐 마침내 달마의 법을 이어 2대 조사가 되었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염화미소나 달마에 대한 이야기들은 거의 대부분 후대에 꾸며진 것으로 신빙성이 거의 없다. 보리달마에 대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후대 선종이 득세하게 되면서 선종을 상징하는 인물로 추존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전설을 꾸며낸 것이라고 보면 된다. 선종은 다른 종파와 마찬가지로 분명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인도에서 건너온 어떤 승려로부터 맹목적인 신앙이나 경전에 대한 지적 이해보다는 실제적인 명상 수련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을 것이다. 그러나 선종은 시간이 흘러가면 갈수록 점차 인도적인 색채를 벗어던지고 중국적인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 출발점은 바로 불립문자에 있다. 불립문자는 선종의 종지다. 이것은 간단히 말하면 언어나 문자를 매개로 하는 이론보다 진리의 체험적 직관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선종 이전의 다른 종파들이 주로 경전을 중심으로 발전한 것이라면 선종은 그런 외적 형식보다는 실제적인 참선 수행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또한 불립문자는 당연히 노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도덕경첫머리에는 "도를 도라고 하면 항상의 도가 아니다"는 말이 있고, 56장에는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노자를 계승한 장자도 이와 유사한 말을 많이 했다. 깨달음을 표현할 때 언어와 문자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은 노장사상만의 특징은 아니다. 전 세계의 모든 깨달은 이들은 그와 유사한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노자나 장자처럼 그렇게 강력하게 언어와 문자의 한계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선종은 노장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강력하게 불립문자와 이심전심을 강조했던 것이다.


불립문자의 일차적인 의의는 석가모니의 참뜻은 경전으로는 전달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선종에서 불립문자를 주장한 것은 궁극적인 진리는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는 것만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그 속에는 인도의 언어와 논리에 대한 반발이 담겨 있다. 사실 중국어와 인도어만큼 다른 언어도 없다. 중국어는 표의문자고 각 글자가 독립되어 일체 변화가 없는데 비해 인도어는 유럽어와 마찬가지로 표음문자고 문법적인 상황에 따라 단어의 변화가 심하다. 그리고 문체에서도 중국 사람들은 간결하고 함축적인 표현을 좋아하고 자연에서 따온 비유나 구체적인 이미지를 좋아한다. 한마디로 말해 시적, 직관적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인도 사람들은 비교적 장황한 표현과 과장법을 좋아하고 치밀한 논리성을 강조하는 편이다. 한마디로 말해 산문적, 논리적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인들은 처음에는 인도의 종교성에 매료되어 불경에 심취했으나 점차 중국적인 맛이 담겨 있는 시적 언어와 직관적 언어로 주체적인 수용을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불법의 참뜻을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 시적 직관과 함축성이 풍부한 선문답(禪問答)을 통해 이해하려고 했다. 예를 들면 어느 선사가 조주선사(趙州禪師)에게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 말은 불법의 참뜻이 무엇이냐는 뜻이다. 그때 조주선사는 "뜰 앞의 잣나무니라."라고 답했다. 참으로 시적이다. 이런 식의 간단하면서도 함축적인 답변은 인도의 경전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선문답, 공안(公案), 화두(話頭)에 대해서 살펴보자. 선문답이란 선사들의 문답, 즉 선의 정신 아래 이루어지는 문답으로, 대부분 깨달음에 대한 질문과 답이라고 할 수 있다. 선문답은 논리적인 이해가 전혀 닿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불도의 참뜻이 무엇이냐는 제자의 질문에 어떤 선승은 "내가 승복을 만들어 입었는데 마가 세 근이었다."고 답했다. 도대체가 동문서답이다. 그래서 우리는 논리가 전혀 닿지 않는 엉뚱한 문답을 흔히 선문답하고 있다고 말한다. 공안이란 원래 관가의 중요한 공문서를 가리키는 말인데 선종에서는 참선의 주제거리로 삼을 수 있는 선문답 또는 언행을 말한다. 공안은 선종의 역사가 한참 진행되고 난 뒤에 확립되었다. 오늘날 선종에서는 보통 17백 가지의 공안이 있다고 한다. 화두는 공안과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데 엄밀히 구분하면 전체 공안 가운데서 핵심 관건이 되는 글자 또는 구절을 가리킨다.


어떤 선사가 조주선사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냐고 물었다. 그러나 조주선사는 '없다()'고 답했다. 선종은 다른 대부분의 대승불교가 그러하듯이 사람은 물론이고 개미나 잡초와 같은 미물에도 불성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조주선사는 없다고 답했을까? 이 공안 가운데 핵심은 ''자에 있다. 그래서 흔히 무자(無字)화두라고 한다. 앞에서 든 선문답 또한 선가의 유명한 공안인데 이것 또한 마삼근(麻三斤)화두, 잣나무화두라고 부른다.


선종이 지니고 있는 중국적인 특색을 또 하나 들면 단도직입(單刀直入)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수도의 시간과 방법 두 방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먼저 인도인들은 한 중생이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기까지 엄청나게 긴 시간을 잡고 있다. 그 기간을 삼 아승지 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승지란 무한을 말한다. 겁이란 인도인들이 시간에 대한 상상력을 잘 보여주는 단위로, 비유에 따르면 둘레 사십 리 정도의 바위를 백 년에 한 번씩 천으로 닦아 사라지는 시간을 말한다. 또 둘레 사십 리의 성에 겨자를 가득 채우고 백 년에 겨자 한 알씩 들어내어 다 들어내는 시간을 말한다고 한다. 전자를 반석 겁, 후자를 겨자 겁이라고 한다. 일 겁만 해도 질리는데 그 앞에 무한을 더하고 또 삼자를 붙이고 있으니 천문학적이라는 말로도 가늠이 안 되는 숫자다. 그 밖의 대부분의 종파에서도 기나긴 수행의 단계를 강조하는 편이다.


그러나 단도직입을 좋아하는 선종에서는 단박에 깨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선사들의 일화를 보면 대부분의 선사들이 짧은 기간 안에 깨달음을 얻는다. 이런 경향은 바로 노장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장자열자에 나오는 도인들의 이야기를 보면 대부분 며칠 내로 깨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짧게는 3, 길게는 9일 정도만 수행해도 대상 세계와 나를 모두 잊고 절대 소요의 경지에서 노닌다. 중국인들의 성향으로서는 도라고 하는 것은 우리와 그리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므로 제대로 찾기만 하면 즉각적으로 체득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 같다.


초기에 불교를 수용했던 사람들은 인도불교의 방대한 체계에 감탄했지만 점차 시간이 흘러갈수록 자신의 전통을 찾아가면서 단도직입을 중시하게 된 것 같다. 선종에서 북종과 남종으로 갈라지는 것도 바로 이 문제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다. 북종의 신수(神秀) 계열이 점진적인 수행을 강조하는 데 비해 남종의 혜능(慧能) 계열은 단박에 깨치는 것을 강조했다. 초기에는 북종이 훨씬 우세했고 남종이 열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남종선이 대세를 장악했고 북종선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중국인들은 결국 즉각적인 것을 더욱 선호했던 것이다. 선종은 후대로 갈수록 더욱 더 즉시에 깨치는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수도의 방법을 보면 전통적으로 인도인들은 논리적 체계를 중시하기 때문에 수행 방법 또한 장황하고도 복잡한 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기도와 호흡, 명상, 경전 읽기, 보시행 등 다양한 방법과 과정을 요구한다. 그러나 선종에서는 번잡한 단계나 방편 없이 한 마음 돌이켜서 자신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바로 깨치면 된다고 말한다. , 자신의 존재의 본질에 대한 전체적이고도 즉각적인 자각을 중시한다. 사실 단번에 깨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한순간에 통찰을 얻는 것이다.


이렇게 한순간에 통찰을 얻기 위한 수도 방법으로 선종에는 묵조선(默照禪)과 간화선(看話禪)이 있다. 묵조선이란 이름 그대로 묵묵히 관조하는 것이다. 가만히 자신의 본성이 불성임을 그대로 비추는 것을 말한다. 간화선이란 화두를 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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