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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3-10-25 12:56:59
  • 수정 2013-11-13 13: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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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기복례(克己復禮)와 연극

좌우명이라고 말하면 너무 거창하지만 내가 생활 속에서 늘 마음에 담고 있는 말은 극기복례(克己復禮)이다. 누군가가 너는 이기적인 나()를 이기고() 상대에 대한 예()를 갖추는 마음으로 돌아가는() 극기복례(克己復禮)의 삶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아직은 부끄러움이 앞선다. 3 여름방학에 일주일 동안 도보로 국토순례를 하며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극기라는 말만이 머리에 들어왔고, 무더위 속에서 행군하며 육체적 고통을 극복하는 것으로 이를 실천한 것인 양 만족했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복례(復禮)가 뒤따르지 않는 극기에 뭔가 허전함을 느꼈고, ()를 위해서는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마음가짐이 나를 이기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고교 진학 후 연극 동아리 활동을 시작한 것도 비록 무대에서 벌어지는 가상현실이지만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을 느껴보고 싶어서였다.



타인의 삶을 내 삶처럼 표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연극은 무대 위에서는 현실이었기에 끊임없는 연습과 배역의 일상에 몰입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서로 연습시간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았고, 학교 공부에도 지장이 있어 외적내적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힘든 일은 연기 호흡을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상대 배역을 배려하고, 내 몸에 배역을 빙의시키는 일이었다. 돋보이는 배역으로 관객의 호응을 받겠다는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친구들과의 갈등도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연극동아리를 시작한 까닭이 다양한 삶을 체험하며 그 속에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예()를 배우자는 것이었기에 가능하면 양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이 양보를 가능하게 하는 힘은 극기(克己)였다. 이러한 이성이 나의 감정과 행동을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할 때면 낯을 붉히기도 했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일이 되풀이 되었다. 이에 나는 고1 여름방학에 다시 한 번 국토순례에 도전했다. 3 때와 달리 극기와 함께 배려에도 관심을 갖자는 각오에서였다. 휴전선을 따라 행군하며 근래 가장 뜨겁다는 폭염에 맞서야 했지만 나는 이미 국토순례 경험이 있었기에 중간 중간 포기하려는 단원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었다.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실천하려는 나의 진심은 다른 단원들에게도 곧 전해졌고, 서로 격려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자 고통보다는 기쁨이 더 큰 순례가 되었다.



국토순례를 마치자마자 나는 연극 공연준비를 시작했다. 9월의 지역축제에 거리연극공연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학교 친구들이 아닌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이었기에 충분한 연습을 해야 했다. 몇 가지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실험적인 연극이라 에피소드에 따라 배역을 나누었다. 그런데 공연 3주 가량을 앞두고 나와 상대 배역 사이에 사소한 일로 감정이 상해 연습이 어려울 정도로 불편을 겪었다. 마음속으로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수없이 되뇌었지만 틀어진 감정이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된 연출 선배가 나를 다른 에피소드 배역으로 바꾸었다. 갑자기 역할이 바뀐 나는 남들보다 몇 배 더 연습해야 했다.



시간은 왜 그렇게 빨리 가는지 공연일인 928일이 후딱 다가왔다. 지하철 역 통로라는 낯선 공간에서의 연극이라 기대와 불안이 교차했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라 그런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큰 호응을 받으며 주말 이틀 동안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자축하는 들뜬 분위기는 공연 뒤에 찾아오는 아쉬움을 충분히 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런데 나는 집에 돌아오며 갑자기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연극은 성공했지만 극기복례(克己復禮)를 실천하지 못한 데 따른 아쉬움 때문이었다. 배역을 바꾸고 나서 전의 상대배역이었던 친구와 감정의 앙금을 풀기는 했지만, 나 때문에 여러 사람들을 당황하게 하고 공연에 차질이 빚어질 뻔했다는 생각에 계속 얼굴이 화끈거렸다. 극기복례(克己復禮)는 이론이 아닌 실천의 문제이니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되새기고 노력해야 하는 실천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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