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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3-12-11 00: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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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프장 캐디는 단순히 클럽을 운반하는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골퍼가 불편함 없이 유쾌하게 플레이할 수 있도록 돕는 일 말고도 성적을 좌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에 캐디는 골프 규칙과 예의를 습득하고 청결한 마음가짐과 단정한 옷차림으로 근무하며 민첩하게 행동해야 하는 서비스 전문직입니다.

  저 역시 그러한 캐디의 역할과 대자연을 벗하는 근무환경의 매력으로 이 일을 시작한 10년차 캐디입니다. 집은 서울이지만 한반도 남쪽 끝자락에 있는 골프장에 근무하며 골프장에서 제공하는 숙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외롭기는 하지만 따뜻한 지역의 골프장은 수도권에 비해 겨울에 쉬는 날이 적기 때문에 집을 떠나왔습니다. 정규직이 아니라 일하지 않으면 수입이 없다보니 쉬는 날이 결코 편하지 않은 캐디의 애환이죠. 어쩌다 오전 오후로 하루 두 게임에 나가면 몸이 파김치처럼 늘어지면서 앞으로는 절대 무리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손님이 많은 날은 내 마음대로 쉴 수 없는 입장이라 또 나가야 합니다. 이런 날 운 없게 진상 손님이라도 만나면 몸과 마음이 모두 피폐해집니다.

  

 캐디들이 기피하는 진상 골퍼 유형을 대체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수다스러운 아줌마 골퍼입니다. 아줌마 팀에서는 남 흉보는 이야기로 반나절을 보내는 아줌마가 한두 명 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옆집 아줌마부터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까지 아줌마들의 공격은 그 대상에 제한이 없습니다. 커피숍에 모여앉아 하면 될 이야기들을 왜 좋은 공기 마시면서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민망한 소리들을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캐디는 3시간 넘게 귀 버리고 흉볼 밑천 떨어진 아줌마로부터 엉뚱한 트집 잡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둘째,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거북이 골퍼입니다. 골프를 즐기기보다 연구하러 온 사람처럼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며 코스를 수차례 확인한 다음 스윙 연습까지 매번 몇 차례씩 하거나, 러프에 깊숙이 빠져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공을 비싼 공이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같은 일행들도 짜증내고, 다음 팀은 영문도 모른 채 마냥 기다리다 경기 흐름을 놓치기 일쑤입니다. 이럴 때 캐디가 재촉하면 눈을 부라리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셋째, 모든 게 네 탓이오 골퍼입니다. ‘내 탓이오.’하는 골퍼가 워낙 드물다보니 어쩌다 그런 골퍼를 만나면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실력이 모자라는 사람일수록 그린에 대한 불만은 당연하고, 심지어는 벙커 위치를 트집 잡으며 골프장 설계자의 무지를 들먹거리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은 그린까지의 거리를 알려줘도 공을 엉뚱하게 날리고는 캐디 탓합니다. 성적 수치심을 유발시키는 농담과 욕설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 골퍼들도 있습니다. 캐디가 조선 궁궐의 무수리인 양 반말과 호통을 일삼는 손님은 하도 보아서 저처럼 10년차쯤 되면 무시하는 노하우가 생깁니다.

  그런데 감정을 다스리는 일이 지나치게 능숙해지면 일상생활에 부정적 영향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모욕을 당하면 수치심이나 분노가 치밀어야 하는데, 무덤덤해진다는 것이죠.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정상적 감정인 희로애락을 지나치게 억제하다보면 우울증 비슷한 마음의 병을 얻습니다. 실제로 일상적인 희로애락의 리듬을 잃어 정신치료를 받는 지경까지 이른 동료도 있습니다. 감정을 다스려 도를 깨우치는 것과 살기 위해 감정을 억제하는 것은 분명 다릅니다.

  우리 사회에는 서비스 정신의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서비스를 받는 훈련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감정노동자들의 서비스 자세와 훈련 부족만을 탓하기 이전에 서비스를 요구할 범위와 방법, 서비스에 대한 올바른 대응법을 익혀 서비스를 극대화시킴으로써 서로 기분 좋은 시간을 갖는 방법 등도 교육이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 모든 방법은 기교에 불과한 것이고, 얼굴 붉히지 않고 서비스를 주고받을 수 있는 본질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일 것입니다. 존중과 배려의 진정성만 갖고 서로를 대한다면 저와 같은 감정노동자들의 애환도 상당부분 해소되리라 믿기에 상존배 운동하시는 분들께 존경과 감사 인사드립니다. 

2013년 12월 

경남 OO골프장 캐디 김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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