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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6-01-31 15: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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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승가대학 현판, 낙산사와 신흥사 일주문 현판, 조계종 포교원 및 교육원 현판, 에버랜드 박물관과 유물관 현판, 백담사 만해기념관 현판, 길상사 일주문과 지장전 현판, 남산골 한옥마을 현판, 다산 정약용기념관 현판, 동학사 일주문 현판, 운현궁 현판, 김좌진 장군 사당 현판, 안중근 의사 기념관 현판, 용주사 효행박물관 현판, 금산사 관음전 현판, 송광사 천왕전 현판 등등


 


이 정도면 서각의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목우 조정훈 선생의 작품을 한번쯤 본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45년 동안 서각 외길을 걷고 있는 그에게 위에 나열한 현판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가 지금까지 제작한 작품 중 현판(懸板)1,600, 절이나 한옥 기둥에 시문(詩文)을 널빤지에 새겨 붙이는 주련(柱聯)2,800점을 훨씬 웃도니 그 방대한 작업량을 얼핏 가늠하기 어렵다.



현판과 주련 제작뿐 아니라 예술가로서 그가 관심을 갖는 분야는 경전 판각이다. 세계 최고의 목판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금강경’, ‘부모은중경’, ‘지장경’, 7만 자에 이르는 법화경등은 이미 완성한 지 오래이다. 목판에 서각한 기문(記文)이 어느덧 335천 자를 훌쩍 넘겼다. 6회 대한민국평화예술대전(2010)에서는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여덟 보살을 배치한 아미타구존도(阿彌陀九尊圖) 목판으로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서예와 회화가 주류를 이루던 예술대전에서 목판 서각분야에서 이룬 쾌거였기에 당시 큰 화제가 되었었다. 지금도 그는 경기도 파주시의 한적한 시골마을 용미리 산자락에서 끌과 망치를 붓 삼아 밤낮 없이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작업실 2층에는 서각에 젊음을 송두리째 바친 삶의 궤적을 엿볼 수 있는 소박한 전시실이 있었다. 그리고 전시실 천장에는 마치 우주천체관 천장의 별자리처럼 먹으로 찍힌 거대한 지도가 있어 방문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바로 그가 목각판으로 복원한 대동여지도였다. 가로 4미터, 세로 8미터에 이르는 이 대동여지도를 전시할 공간이 마땅치 않아 우선 천장에 붙여놓은 것이었다. 1861년 고산자 김정호가 평생의 역작으로 만든 대동여지도는 모두 126판에 한반도 전체를 담아낸 목각판 지리도이다. 그런데 지나치게 상세한 내용에 놀란 조정에서 원판을 모두 압수해 불살라버리는 바람에 현재 1판만 겨우 남아 있다. 이에 그는 대동여지도 126판 전체를 원본과 똑같은 목각판으로 제작하였다. 4년이 걸린 고된 작업이었다.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그와 같은 장인(匠人)이 있었기에 목각판에 먹을 묻혀 직접 찍어내는 목판 인쇄의 멋과 전통이 되살아 난 것이다.





현대 인쇄 수명이 200년이라면 목판 인쇄의 수명은 천 년 이상이다. 그렇기에 그는 천 년의 미래를 내다보며 대동여지도와 불경 말고도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훈민정음목각판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그의 작업은 멈춘 것이 아니라 아직도 여전히 진행 중이기에 군살과 상처투성이인 그의 투박한 손이 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게 보인다. 이제는 그의 작품들이 문화재가 되어야 하고, 그는 당연히 인간문화재로 등극하여야 할 것이다.



지난 연말연시에 그는 소운 박병옥 선생의 글씨를 목판 서각 예술로 승화시키는 상존배 전국 지부와 지회 현판 제작에 몰두하였다. 흔쾌히 재능기부를 해준 것이다. 상존배 전국 지부와 지회에서는 이제 문화재급의 현판에 걸맞는 자긍심을 갖고 상존배 운동의 확산과 정착을 위해 더 큰 노력을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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